나는 꽃이라는데
땅으로부터 시작되는 악기이고 싶었던
변주를 거듭하던 전생이 있었지

비벼댈수록 두꺼워지는 날개의 겹이
벗어나지 못한 연한 나비의 속살인지를
선명한 이름을 써 넣다가 알게 되는
긴 밤
굼뜬 몸을 뒤척인 후에야
풍긴 향유 속에도
미생의 물질들이 녹아 있음을
꽃이라는 나는 왜
비천한 미각에 소름이 돋는지

관악의 깊은 속에서
간간히 멀어지는 이명耳鳴
흔들리는 단말마斷末魔를 연주하다
홀연히 지고 마는 꽃이라는데


* 네펜데스(Nepenthes) : 여름이 시작됨을 알려주듯 네펜데스는 기온이 더 이상 내려갈 일이 없는 초여름에 나온다. 포충낭(벌레잡이통)에서 향긋한 냄새로 곤충을 유인, 포충낭 안의 고여 있는 소화액으로 벌레를 잡는 식물이다. 포충낭 안의 무균 액체는 통증완화제, 화상, 기침, 눈병, 피부병 등의 치료약으로, 뿌리는 해열제로 알려졌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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