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3층 높이까지 다다르는 늘 푸른 나무가 서 있었다. 아침에 창을 열면 청솔모가 그 나무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타고 올라와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기도 하고 옆 나무로 폴짝 뛰어 넘어가기도 하였다. 태국 방콕은 더운 날씨지만 아침이면 바람이 서늘하고 상쾌한 온도이다. 체조도 하고 바깥 공기를 호흡하면서 고향 생각에 젖기도 하였다. 건너편 풀장에는 늦은 밤에 조명등 아래 청춘 남녀들이 수영을 즐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향수를 달래기도 하였다. 대학 캠퍼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담장을 대신하였다. 우리나라의 봄날과 여름날의 모습이 함께 하는 듯 푸른 산천과 꽃이 지천에 널려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좋았다. 1년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거리의 같은 나무 그리고 녹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청솔모도 늘 들락거렸고, 청춘 남녀들의 늦은 밤 수영도 그러하였다. 대학 캠퍼스 꽃들도 피고 지고를 반복하겠지만, 나의 눈에는 그대로였다. 봄에는 꽃을 즐기고 여름날에는 녹색 숲을 만끽하는 우리나라의 봄과 여름이 이곳에는 혼재해 있는 셈이다. 그들도 우기와 건기가 있고 나름의 계절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언제나 같은 계절인 듯하다. 의복도 여름철 옷 한두 벌이면 1년을 지낼 수 있으니 큰 변화 없는 생활이 그곳의 일상이 되었다. 눈앞의 푸른 나무와 캠퍼스의 꽃들은 나의 호기심을 더 이상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도착하였을 때에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푸른 숲길을 거닐어 보기도 하였지만, 귀국을 준비할 때에는 그들은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봄이 한창이다. 화려하였던 벚꽃은 지고 푸른 잎이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다. 울타리에는 붉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이 수줍은 듯 잎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벚나무에는 언제 그렇게 화려한 꽃이 있었는지 찾아 볼 수 없다. 장미도 시간이 흐르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여기저기의 꽃들은 봄바람에 흩날려 꽃비로 내리기도 하고 아스팔트 위에 꽃가루를 뿌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면서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봄이 성큼 다가 왔다. 겨울옷은 이미 옷장 안으로 들어갔고 봄옷이 나왔다. 한 낮에는 더위가 찾아 왔고 자동차의 에어컨을 켜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더운 여름날이 오고, 봄꽃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계절은 그렇게 바뀌면서 지난 계절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기고 또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땅 밑으로부터 생명들이 올라온다. 매화가 지고 난 과수원에는 청매실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얼갈이배추는 달팽이와 무당벌레들이 먼저 먹고 난 후, 남은 것이 우리들의 몫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봄날을 즐기는 식탁의 반찬이 된다. 마당 위를 휘젓고 있는 꿀벌들이 자기들의 집인 벌통으로 돌아가고, 저 멀리서 뻐꾸기와 딱따구리 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셈이다.

계절의 변화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때론 힘들고 고충도 있는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들을 이겨내면서 삶의 풍성함도 성취감도 맛보지 않았던가? 수고하고 기다려 준 당신의 삶에도 따뜻한 봄날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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