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옻칠갤러리 옥현숙 작가

“한 집 건너 한 집에 공방이 있었지만, 제가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밥때도 잊어버리고,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매달려 있네요.”

통영나전칠기교실 수료생들의 모임인 옻나래 회장 옥현숙 작가의 말이다.

옥현숙 작가가 옻칠과 나전을 만난 건 2008년 통영옻칠미술관을 통해서다. 김성수 관장은 2007년 통영옻칠미술관을 열고 통영의 화가를 대상으로 옻칠회화 전문가 과정 수강생을 모집했다. 동양화가였던 옥현숙 작가는 서슴없이 이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동양화도 30대 들어와서 시작해, 빨래를 다 태워 먹을 정도로 몰두하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옻칠회화는 더 재미있더라고요. 이전에 했던 동양화가 밋밋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옻칠을 하고 건조하고 사포로 갈아내고 다시 덧칠하는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광택을 내는 옻칠은 옥현숙 작가를 매료시켰다. 갈아낼수록 영롱한 빛깔을 띠는 자개도 너무 아름다웠다.

통영옻칠미술관의 3년 과정을 다 마친 2010년, 옥현숙 작가는 옻칠 작업을 위한 공방을 차렸다. 과정을 수료했다는 건 겨우 장인의 길에 입문했다는 뜻이었으므로, 옥현숙 작가는 과정을 수료한 뒤에도 옻칠미술관을 1년 더 다녔다.

몇 년이 지난 2014년, 옥현숙 작가는 통영시나전칠기교실 4기에 입학했다. 가장 기초적인 옻칠부터 가르치는 과정이었지만, 나전칠기교실에서는 공예품에 주력했기에 이 또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매일 옻칠을 만지는 옥현숙 작가의 손은 사포질을 많이 해 관절이 망가졌다.

“공방을 하면서 나전칠기교실을 다녔어요. 매일 6시에 출근해 작품에 매달리다 보면 어떤 때는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몰두하게 돼요. 남편이 이해해주고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지, 안 그랬다면 어림도 없었을 거예요.”

나전칠기교실에서는 만든 작품을 여러 대회에 출품해 작가들의 창작욕을 고취시킨다. 입학 전인 2013년에 한국나전칠기 기능경기대회 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옥현숙 작가는 중급반에 다니던 2015년에 경상남도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동백무늬가 새겨진 옻칠 컵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경상남도공예품대전 금상, 원주시 한국옻칠공예대전 장려상,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장려상 등 내로라하는 공예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옻칠은 우아하고 미려한 빛깔과 광택이 이목을 끄는 품위 있는 천연 무공해 도료예요. 천연방부제를 내포하고 있어 99.9%의 항균성 항곰팡이 능력, 84%의 탈취력을 갖고 있지요.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연구에 따르면 몸에 좋은 원적외선방사율이 1일 기준 89.5%까지 나온답니다. 이런 옻칠의 가치를 알게 되면 자꾸 옆에 두고 사용하고 싶어지지요.”

옥현숙 작가가 공예품으로 돌아서게 된 이유는 이런 옻칠의 효능을 실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작가의 공방에는 수저, 그릇, 컵, 주걱, 도마 등 생활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공예품이 가득하다.

“옻칠 그릇에 밥을 담아 3년만 먹으면 위장병이 없어진다는 옛말이 있어요. 옻칠이 음식 속의 세균을 죽여 몸속에 독소가 쌓이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옻칠주걱이나 옻칠도마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물이 스며들지 않아 위생적이다.

이렇게 좋은 옻칠제품의 단 한 가지 문제는 가격이 낮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옻칠이라는 도료 자체가 10년 된 옻나무에 상처를 내서 떨어지는 진액을 정제해 만들기 때문에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그 비싼 재료를 40~50회에 걸쳐 덧칠하고 건조하고 갈아내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기 때문에 수공의 수고까지 더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이 팔리는 옻칠 컵이 5~10만원을 호가하는 이유다.

지난해 옥현숙 작가의 통영옻칠갤러리에서 생산하는 옻칠컵은 경상남도 추천상품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오방색으로 디자인한 ‘귀중합’은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에서 진행한 ‘2020년 공예 온라인 유통채널 입점 지원’의 심사를 통과해 9월부터 네이버 아트윈도, 아이디어스, 해외플랫폼(PINK)의 3개 쇼핑몰에 입점하게 됐다.

“귀중합은 전통 규방에서 귀중품을 보관하던 작은 상자예요. 이번에 만든 귀중합은 옻칠 중에서도 나무 위에 칠을 하는 목칠과 달리 기물의 형태를 삼베로 겹겹이 싸고 그 위에 칠을 거듭하여 만드는 협저 기법으로 제작했어요. 칠은 전통적으로 자연의 재료에서 만든 오방색을 사용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또렷하게 피어나는 옻칠의 특성상 색깔이 더 맑아질 겁니다.”

올해는 쿠팡에서도 콜이 와서 4월부터 입점하게 됐다. 온라인 매장 입점이 곧바로 대량 매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옥현숙 작가는 이 비대면 시대에 의미 있는 걸음을 시작했다. 천년 전통 옻칠 공예품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생활 속으로 깊숙이 가져갈 걸음을.

귀중품을 보관하는 귀중합
옻칠로 그린 통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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