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두 성모의원 원장·소설가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통영 작 <황소>가 국립미술관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유문두 성모의원 원장·소설가

타는 듯 발그레한 노을을 배경으로 소는 항정 같은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고, 부릅뜬 왼쪽 눈으로 오른쪽을 보고 있는 듯하다. 뫼비우스의띠 모양의 코는 코뚜레 없이 스노우보드처럼 생긴 윗입술에 얹힌 듯 있다. 아래에 희디흰 이빨 2개가 뚜렷하여 영각을 토하는 입은 노을처럼 붉으며, 줄무늬 모양의 머리와 상체는 호랑이 같고, 단단하게 보이는 두 작박구리로 뜸베질이라도 하려는 모양새가 이듭이 넘은 전형적인 황소다.

대항 이중섭이 통영에서 전시한 ‘황소’가 작고한 이건희 삼성회장의 컬렉션들 중 근현대미술 10선 중에서 제일 먼저 꼽혔다.

이중섭, 그는 가족을 데리고 원산에서 피란 내려와 제주도 서귀포에서 11개월 지내다 부산으로 와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아내 이남덕(마사코)과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보낸 중섭은 그래도 그림을 그린다. 부산 범일동을 그리고, 통영 풍경을 그리고, 황소를 그렸다. 진주에 가서도 황소를 그렸다. 황소 그림들 중에서 위 <황소>가 제일 압권이다. 대한해협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자신을 황소에 녹여냈다. 그게 가족을 그리는 작가의 정신이요, 간절한 몸부림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심중을 나타내고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

넘쳐나는 물질 속에 사는 우리는 그 심중과 아픔을 얼마나 느끼는지 생각해보자. 중섭이 통영에서 그린 많은 그림 중 한 점이라도 통영에서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벅찰까. 그런 기회를, 통영으로 올 수 있는 <황소> 그림이 통영으로 오지 않고 국립박물관으로 간단다. 왜? 이중섭 미술관이 없기 때문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그림이 가는 서귀포 같은 미술관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통영시는 한국 섬 진흥원 유치를 위해 잠깐(?) 매달리다가 목포시에 져버렸다. 통영시가 신청했던 국립한국문학관도 서울 은평구에 세워졌다. 목포시는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섬 진흥원을 설립한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통영은 겨우 두세 달 바짝 열을 올렸다.

국립한국문학관도 그랬다. 그 문학관이 그 지역구 국회의원의 치밀한 작품임을 그 국회의원으로부터 직접 나는 들었다. 준비성이 없는 통영시로서는 아무리 문학예술도시니, 섬이 많으니 해도 애당초 될 수 없는 게임이었다.

통영시 관계자, 특히 시장님은 이런 사실을 아는가?

이런 사실을 미뤄 보건대, 만약 통영에 이중섭 기념 미술관이 작으나마 있었다면 이건희 컬렉션들 중에서 연고가 있는 <황소> 그림은 통영으로 오지 않았을까? 만약에 안 주겠다면 달라고 떼라도 써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통영은 그렇게 해 보지도 못 하니……. 이것이 이뤄졌다면 얼마나 큰 선물이며 벅찬 감동일 것인가.

나전칠기도 그렇다. 이미 쇠퇴한 거라고 천대하면 안 된다. 시나브로 없어지는 명품을 나전칠기 시립박물관이라도 만들어 기증 받거나 사서 전시해야 한다. 그래야 언제 있을지 모르는 나전칠기 국립박물관이 생기면 말할 수 있다.

세계적 미술 아트페어가 스위스 소도시 바젤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유는 바젤미술관에 대여하여 전시 중이던 피카소의 작품 두 점 때문이었다. 바젤 항공사 소속 비행기가 추락하자 바젤 항공사 사장은 사망한 승객들의 막대한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피카소의 그림 두 점을 팔기로 했다. 그러자 시민들이 후원금을 내고 시 긴급예산으로 ‘앉아있는 광대’ 그림을 구입했다. 이에 감동한 피카소가 시장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두 점을 기증했다. 바젤의 컬렉터들은 자기들이 아끼던 피카소 그림들을 기증했고 미술관을 지어 전시하였다. 피카소 그림이 단지 전시된 인연으로, 바젤은 세계의 미술시장을 주도하며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고 있다.

통영시 관계자 분들이시여! 제발 눈을 크게 뜨시고, 넓게 보시고, 미래를 보시옵소서, 제발.

이중섭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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