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지난해에 따로 챙겨 둔 조그마한 씨감자들에 싹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른 봄이고 아직도 추위가 있는데, 감자를 심어야 할 것 같다. 파와 사계절 배추를 뽑아냈다. 퇴비를 두둑에 뿌리고, 삽으로 흙을 파서 다시 두둑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찬바람이 아직 떠나지 못한 밭에는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이 남아 있었다. 두둑을 곱게 만들고 씨감자를 심었다. 순이 위로 향하게 하여 조심스럽게 하나씩 심어 나갔다. 순이 다치면 감자는 썩어 버리기 때문에 손놀림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세 두둑을 심고 나니 허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하였다. 비닐을 두둑위에 덮어 추위로부터 냉해 예방 조치도 하였다. 그리고 끝자락과 골짜기 쪽의 비닐도 흙덩어리를 얹어 눌러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켰다. 감자의 싹이 제대로 올라오기를 기대하면서 그날의 감자 심기는 끝이 났다. 일주일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고 있다. 밭으로 가서 새싹을 찾아보아야겠다. 비닐 속에 있을 새싹의 모습을 상상하여 보니 설렘이 다가온다. 노란 색일까? 뽀얀 색일까? 하는 궁금증부터 추위에 잘 참아내었을까? 하는 염려증까지 발동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감자 싹은 아직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너무 깊게 심은 것일까? 비닐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새싹이 상하였을까? 등 온갖 상상을 해보며 다시 일주일을 기다렸다. 비가 오고,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낮 기온이 15℃를 오르내리고 있다. 농장에 있는 집안 동파 방지용 보일러 스위치를 끄고 밭으로 갔다. 비닐 아래의 싹이 돋으면 비닐에 표시가 날 것이고, 그곳을 찾아서 구멍을 내어 주어야 한다. 싹은 잘 자라고 잡초의 자람은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이 중요하다. 그러나 까만 비닐에는 싹이 올라오는 표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비닐을 걷어 내기로 하였다. 드문드문 감자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그 하나하나의 모습이 추위를 이기고, 얼굴을 나에게 내밀어 주는 것이 대견하였다. 자연의 공기도 쏘이고 비도 맞으면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며 두둑을 손질 하였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으나 밤낮의 일교차가 크다. 밤 기온이 뚝 떨어졌다. 혹시나 감자 순이 냉해를 입을까 걱정이 앞섰다. 우리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가오길 기대하며 지낸 3주 만에 초록의 감자 순이 두둑 위에 모습을 갖추었다. 밭에는 제법 봄기운이 물씬하다. 잡초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올라오지만 나에게 속절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곧 밭에는 초록 물결이 일 것이다. 기대 속에서 호미를 들고는 이랑을 북돋워 주었다.

지난해에 보관하였던 조그마한 씨감자들이 나를 애태우게도 하였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둑을 만들고 퇴비를 넣은 나의 땀이 헛되지 않았다. 기대하며 정성을 다하면 자연은 응답하여 준다. 싹이 올라오는 과정은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 그자체이다. 그 작은 생명력이 다가올 수확의 기쁨보다 더 큰 감동이다. 자연, 사람, 꿈, 그 무엇이든 기대가 있는 세상이 좋다. 그리고 과정이 결과보다도 더 소중한 경우가 나의 삶에서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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