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에 들어오다 저 편
미려한 꿈을 꾸는 만발한 풍경에
선경에 들어 온 듯 눈이 맑다
꽃잎이 열리는 절묘한 순간부터
향에 취한 아찔한 낮에는
시 몇 줄 읽어주는 사람과
마주앉고 싶은데

이 꽃은 무슨 일로 성을 비우고
몰래 나온 여인같이
풍긴 색에 취하여 봄에 겨운지
상춘곡 몇 장을 혼자 적어 부르는가

동백보다 붉은 움이
온 몸 덮어오는 꽃잎이 될 줄은
여기에 놓고 갈 씨앗까지 말을 하는
모란이 잡은 옷깃에
마침내 시작되는
기이한 조현증에 앓게 하는데

빈 집에 더 이상 꽃은 비어 있겠고
모란만 피고 지고
이 봄 지나가면 쪽문 난 곳으로
고요히 다녀가는 그 사람
을 지어 모란을 데려놓을 일인지.


* 모란 : 목단이라 불리기도 하며, 화중화花中花 라고 할 만큼 꽃의 크기가 풍부하고 아름답다. 부귀와 명예, 화목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많이 그려지며, 중국에서는 부귀화라고도 한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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