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故 김희준 시인(1994-2020)의 유고시집의 제목이다. 누구도 시들지 않는 생명이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것일까? 시인은 너무도 젊은 나이에 갑자기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다.

채 피우기도 전에, 아니 이미 절정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실현하며 낯설음과 위험하고 불안한 언어로 시의 새 지평을 거침없이 열고는 우리 곁을 떠났다.

안타까움, 비통함 속에, 지난 5일 오전 11시 용남면 선촌마을에 있는 통영RCE세자트라숲에서는 김희준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박길중 시인이 사회를 보았고, 손미경 시인이 고인의 대표시 ‘태몽집’을 낭독했다.

김 시인의 통영시 인재육성장학회의 선배이기도 한 김예슬 바이올리니스트의 ‘타이스의 명상곡’이 노란 유채꽃 물결과 함께 시인의 환영처럼 흘렀다.

제막식 후에는 김희준시비건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김순효 위원장이 올리브나무 기념 식수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서 눈길을 끈 추모객은 어린 초등학생과 청소년들이다. 시인이 2017년부터 통영 RCE의 청소년문학아카데미 강사로 있으면서 양성한 제자들이다.

죽림초 6학년 배정원 군은 “어머니와 함께 선생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식사 봉사도 아름다웠다.

제2, 제3의 김희준 시인이 될 이 어린 통영의 꿈나무들에게는 김 시인이 심어놓은 시와 문학예술의 씨앗이 심겨 있을 터다.

추진위는 지난 9월 14일 발족하며 시비 건립을 위해 올리브 모금안을 세웠다. 목표금액 2천만 원은 불과 3개월 만에 달성됐다. 350여 명의 후원자와 후원단체가 함께한 덕이다.

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노고와 헌신 속에 만들어진 시비는 직립이 아닌 와상의 형태다. 낮은 모습으로 겸양과 포근함을 나타내고, 와인잔으로 젊은 가능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뛰어난 재능과 영혼의 소유자인 김희준 시인은 생전에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감을 받았던 세자트라숲에서 영원히 길들지 않는 영혼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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