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1)(茶山)의 화사(花史)에도 오르지 못한
여린 불꽃 심장을 만들어서
풀 섶 깊이 누웠다가 한 천 년 기다렸을
붉게도 번져오는 꽃색을 보았다는 사람아

누웠던 곁눈에 들어오던 그때처럼
온전히 엎드려 결을 열어 보여주던
사람아, 꽃잎에 겹친 사람아
그만 거기서 풀이 되고 숲이 되시게

핀 듯 진 듯 벙근 꽃이
산목련 지던 날에 울어주던 새도 잃고
품에 고이 안아줄 난만하던 봄도 보내는
그것을 보았던 사람아

먼 길을 돌아와도 짙은 그늘뿐인 것을
거기 산목련 아래
낮게도 엎드려 눈 맞추는 곳에서
아린 등 만져주는 봄바람 콧등에 얹고
차라리 다산 되어 꽃을 품어 주시다가

풀이 만든 결대로 누워
한 시대 시작하는 화왕계(花王戒)도 적으시고
앉았다 섰던 자리에 찻자리도 만드시게
그윽히 지나다가 나도 앉아 보겠으니


1)다산(茶山)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 할미꽃 : 양지바른 무덤가에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의 할미꽃은 노고초(老姑草) 또는 백두옹(白頭翁)의 한자명을 가지고 있다. 많은 전설을 가졌다. 한국특산종이며 “슬픈 기억”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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