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회영 도봉새마을금고 이사장

LH 도시재생사업의 한가운데 놓인 통영 도남동에는 도봉새마을금고가 있다. 원래는 도남새마을금고였지만, 행정통합으로 ‘도남동’이 없어지자 도남동과 봉평동의 머리글자를 따서 ‘도봉’새마을금고라고 개명했다.

1만2천 명의 회원이 이용하는 도봉새마을금고의 수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이사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성실과 노력으로 여성의 벽, 나이의 벽, 학력의 벽을 모두 뛰어넘은 한 한회영 이사장(53)이 그 주인공이다.

한 이사장은 지난해 3명의 후보가 나선 제14대 도봉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에서 72.8%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통영지역 7곳의 새마을금고 현직 이사장 중 유일한 여성 이사장이다.

2000년 8월부터 약 20년간 도봉새마을금고 직원으로 재직하면서, 탁월한 업무능력과 친절로 10년 연속 전국 새마을금고 공제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 이전에는 항남동 새마을금고에서 13년 동안 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7년에 항남동새마을금고 평사원으로 입사했어요. 어릴 때는 실수도 많이 했지요. 반갑게 맞는다고 뛰어가다가 자빠지는 것은 그나마 귀여운 실수입니다. 송금 실수 같은 것을 하면 그야말로 눈물 빼는 일이 생기는 거지요.”

‘받을 돈이 있으니 얼마를 제하고 송금해 달라.’는 식의 고객 요청을 들어주었다가, 수령자가 소송을 한 일도 있었다. 직원 휴게실이나 화장실에서 혼자 울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사장이 된 지금까지 34년 동안, 한회영 이사장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새마을금고와 함께 살아왔다. 각종 인센티브 사업이나 프로젝트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주말이나 쉬는 날에도 상황이 발생하면 새마을금고로 뛰어온 세월이다.

“우리 이사장님이요? 아주 열정적이시고 사명감이 투철하시죠. 회원들 살림을 속속들이 알 뿐 아니라, 직원들의 고충도 잘 알고 계시죠.”

도봉새마을금고 직원들은 한회영 이사장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쩌면 ‘누님이 이사장 되시면 피곤할 것 같은데’ 하는 이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이사장에 출마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가장 큰 걱정은 만약 떨어지게 되면 오히려 평생 다녔던 직장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만히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데, 왜 무모한 도전을 하느냐?”고 했다고.

어떤 면에서 그녀의 도전은 견고한 남성 중심의 사회질서에 대한 항의였다. 대학 나온 남자 후배들이 속속 승진을 하는 가운데, 한 이사장은 아무리 성과로 능력을 증명해도 승진을 할 수 없었다.

“나이 많은 부하 직원이란 참 애매한 자리죠. 아마 동등한 기준에서 승진이 이루어졌다면 이사장에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차장 5년차 때 그는 이사장에 도전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하자, 직원들이 ‘차장님은 노력해서 된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그렇게 인정해 주었어요. 참 고맙더라고요.”

한 이사장이 아무 어려움 없이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생활을 한 건 아니다. 12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있다 가신 시어머니를 모셨고, 자폐를 가진 작은 아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창원이며 진주를 뛰어다녀야 했던 나날이 있었다.

“남편이 외아들에 막내라, 어머니 나이가 많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저를 많이 의지하셨던 건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지요. 나중에는 치매까지 와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꿈같은 시간을 보냈네요.”

이사장 된 지 2년, 도봉새마을금고는 도남동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이사장 방에 찾아와 커피를 마시는 회원, 작은 돈을 맡기며 자식들 이야기, 손주들 이야기를 한바탕 풀어놓고 가시는 회원들로 도봉새마을금고는 화기애애하다.

그런데 요즘 도봉새마을금고에는 큰 걱정이 하나 생겼다. 금고 건물이 도시재생사업에 포함되면서, LH가 수용하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땅인데 LH가 사서 근린생활 시설로 바꾸어 다시 되판다는 거예요. 저희는 보상을 받아 나가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이만한 위치도 없고, 마땅히 갈데도 없어요. 그런데 법적으로는 LH가 강제수용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회영 이사장은 시청과 의회를 찾아다니며 도봉새마을금고의 고충을 알리고 있다. 회원들의 서명도 받고 있다.

“1달 전쯤 최종보상안을 가져왔는데, 보니까 저희 건물의 20%만 도시계획에 들어가는 거예요. 저희 입장은 건물 일부를 부수더라도 도시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20%만 수용하면, 나머지는 우리가 수습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LH는 건물 모두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지난 수요일에도 시장님을 만나 항의했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어요.”

도남동에는 특히 어르신들이 새마을금고를 많이 이용한다. 도남동이라는 이름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의 상실감이 아직까지 있는데, 건물까지 자리를 옮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선다.

“1만2천 어르신들의 사랑방 같은 새마을금고가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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