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방글라데시 다카국제공항에 내렸을 때는 석양 무렵이었다. 어둑한 공항 내부가 을씨년스럽기마저 하였다. 공항을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일꾼들이 짐을 들어 주겠다고 하였지만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전정보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 짐을 옮겼다. 공항을 빠져 나가는 동안, 밖에는 어둠이 계속 내리는데도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숙소에 여장을 풀었지만 컴컴한 복도의 희미한 백열등 불빛은 불안한 느낌까지 들었다. 다카는 자동차 매연이 뒤덮은 도시이다. 매캐한 매연, 경적소리 그리고 남루한 모습의 거지들이 가득하였다. 길가에는 노숙자들의 천막이 즐비하고 담요 하나에 의지한 사람들도 곳곳에 있었다. 자전거, 인력거, 릭샤 사이에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는 도심의 모습이다. 물건 하나를 사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들도 쉽게 마주친다. 우리의 모습을 구경하려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하였다. 농촌으로 향하였다. 한쪽에서는 벼 베기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내기를 하는 들녘을 지났다. 동네 어귀에는 산에서 가져온 나무, 줄기 그리고 잎으로 만든 우리의 환영 아취가 준비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명절을 맞이한 양 북적대는 모습에 놀랐다. 귀한 손님이 오면 동네의 큰 염소를 바친다고 한다. 송아지만한 염소를 우리 부부 앞에 끌고 와서 목에 칼을 꽂고 피를 뽑았다. 그리고 그 피를 마시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먹을 수 없었다. 요리가 요란하게 진행되고 음식과 밥상을 받았으나, 죽임을 당한 염소 생각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동네사람들은 마당에 모여 담소하며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냇가로 산책을 나갔을 때에는 동네 꼬마들이 우리 뒤를 줄지어 따라 왔다. 그들에게 우리 부부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동네를 떠날 때에도 아이들이 자동차 뒤를 따르고 손을 흔들며 아쉬워하였다. 또 다른 지인의 집 마당 입구에 들어섰을 때에는 게스트 룸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 앉으니, 동네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려고 창틈으로 얼굴을 경쟁적으로 내밀었다. 안내된 야외 식당은 저수지 둑에 임시로 마련한 천막이었다. 저수지의 물을 빼내니 커다란 물고기들이 나왔다. 그곳에서 즉석요리를 하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즐겼다. 해거름이 되니 사탕수수를 지게에 진 사람, 소 구루마에 실은 사람, 경운기에 실은 사람들이 줄지어 설탕공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들판 가운데에 설탕 공장이 있었다. 설탕공장 방문 기념으로 갓 생산한 설탕을 한 봉지씩을 받았지만 이틀이 지나니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홍수 피해와 국경 분쟁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산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비옥한 농촌 들녘, 겨울 최저 21℃, 여름 최고 35℃ 사이의 기온으로 사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나라, 벵골 만의 훌륭한 해양어장이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그리고 조사에 따라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자원이 우리를 얼마나 부강하게 할 수 있는지? 재산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방글라데시를 생각하면 이러한 의문들에 휩싸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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