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초록 대롱에 있었던
지루한 생장(生長)을 마치고
꽃판 여는 때를 기다린 나에게
긴 유리병을 보이며
소녀가 물어온다
이곳은 답답하겠지?

맞아, 그럴 거야
나는 아마도 답답할 것이고
물이 닿지 않은 대궁의 심장이
팔딱이는 모습도 안쓰럽겠지

마음을 열어 준 소녀처럼
더 단단하고 활발하게
선명히 벌어지는 빛깔로
처연히 떨어질 때까지는
조금 덜 답답할 거야

안부를 물어주는 소녀
그 맑은 얼굴을 마주한 뒤
세상의 고마운 눈빛들을
품었다가 열어 줄 거야


* 튤립 : 일종의 암호 같은 메시지로 감정표현을 하게 된 꽃말의 부여는 17세기 터키에서 발상이 되어, 19세기 프랑스에서 성행하였다고 한다. 사랑에 관한 좋거나, 좋지 않은 꽃말은 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의 튤립은 몇 세기 전에는 수천마리의 황소보다 값어치가 나가는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 꽃이다. 바야흐로 튤립의 계절이다. 꽃이 코로나 이전의 축제를 기억하면 어떻게 하지?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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