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성 남문을 살려라③

옛 남문 성벽이 남아있다.

통영성은 숙종 4년인 1678년 제57대 통제사인 윤천뢰가 축조했다. 포구에서 세병관으로 이어지는 주요 교통로의 입구로서 과거 통영성의 정문 역할을 했다.

세병관은 고관의 집무실 정도의 건물이 아니라 임금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통제사의 집무실은 따로 ‘운주당’에 있었다.

통제사는 왕을 대리하여 조선의 수군을 움직이는 수군 통수권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수군 통수권자이기에 통제사의 진정한 위상은 8전선이 정박해 있는 병선마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병관과 병선마당을 잇는 중심이 바로 남문이다.

세병관과 남문과 병선마당을 잇는 길에 통영의 정통성이 있다.

남문의 디지털 복원은 오히려 실제 남문 복원의 길을 가로막을 공산이 크다. “디지털로 복원했으니 됐다”는 식으로 실제 복원의 시기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지난 2015년의 발굴 조사를 토대로 남문의 위용을 살펴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통영성의 남문은 홍예문으로, 일명 ‘청남루’라고 불렸다.

1736년 윤택정이 중수했으며, 1765년 124대 윤태연(尹泰淵)통제사 때 성을 개축하면서 남문에 기와로 얹고 단청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 남문은 이후 1895년 폐영될 때까지 약 290년 동안 사용되었다.

통영 남대문(사진 출처 : 1913년 선남발전사)<br>
통영 남대문 1913년(출처 : 선남발전사)

지난 2017년 경남도문화재연구원에서는 ‘통영성 정비사업부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벌여 ‘통영성 남문지’라는 보고서를 냈다.

통영시가 세병관 일대에 대해 통제영거리 조성사업을 실시하면서, 남문지 복원에 대한 기초자료를 만들기 위해 의뢰한 발굴조사였다.

연구팀은 2014년 12월 8일부터 2015년 3월 13일까지 현장조사일수 60일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추정되는 남문지의 길이는 약 24.1m이다. 하지만 이 길이는 서쪽 끝의 석재의 규모가 갑자기 작아지는 부분과 동쪽 끝에 단이 생기는 부분을 감안하면 약 19.9m로 더 작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성벽의 폭은 서쪽 끝을 기준으로 했을 때 8.7m로 확인됐다. 통영성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주성 공북문의 육축 폭이 8.3m인 것보다 크다. 진주성 공북문은 내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문이며, 통영성 남문 역시 포구에서 통제영지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통영성의 정문 역할을 하였다. 문의 형태 역시 홍예문 위로 2층의 누각을 올린 점도 동일하다.

연구팀은 “발굴조사 이전에는 이번 조사지역이 통영성의 남문지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부터 포구의 현대식 개발과 중앙시장의 조성으로 인해 가장 먼저 통영성의 흔적이 지워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굴조사 결과 지표 아래에는 남문의 흔적과 함께 성벽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조사팀은 “조사구역 내에서 확인된 육축의 외면은 대형 상수도 관로와 현대 건축물로 인해 아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남문의 정확한 길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주변 건축물의 철거와 상수 관로의 이설 이후 육축 입면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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