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서 찬란한 문화와 격조 높은 예술을 꽃 피워냈던 곳! 우리 통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남, 호남, 호서의 수군을 관할하던 삼도수군통제영에서 통영이란 말이 유래되었듯이, 통영의 역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통제영을 자리 잡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통영은 군사도시로서 또한 남해안 물산이 모이는 교역지로서 발전을 거듭하면서 통영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이를테면 서울의 지체 높으신 관리들의 미적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12공방으로 대표되는 조선 최고의 공예품이 생산되었고, 통영갓, 통영소반, 통영자개장으로 대표되는 “메이드 인 통영”을 앞세워 조선팔도에 통영을 각인시켰다. 생전에 박경리 선생도 상대에게 통영이 고향이라고 하니 통영 자개장을 구해달라고 했다는 일화를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통영은 그 자체로 이미 최고급 명품 브랜드였다.

또한 멸치를 비롯한 풍부한 수산 자원은 통영을 먹여 살리는 젖줄로 근대적 자본이 축적되기에 충분하였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 개항지가 아니었음에도 일찍이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통영은 20세기 초부터 부산, 마산, 진주와 더불어 경남 4대 도시로서 그 위상이 당당했으며 부자 도시로도 명성이 높았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조사에 의하면 통영읍민의 40% 정도가 부재지주로 전국에 산재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넉넉한 경제력에 수준 높은 미적 의식이 더해지다 보니, 하늘의 은하수와 같이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시인 유치환·김춘수·김상옥, 소설가 박경리·김용익,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등 거장들의 자취는 아직도 선연하다. 정량동 뒷골목에서 파이프를 물고 이영도 시인에게 편지를 부치러 통영우체국으로 향하는 청마 선생이나, 남망산 어느 기슭에서 화구를 펼쳐 놓고 스케치 구상에 몰두 중인 전혁림 화백의 모습은, 통영시민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아련하고 정다운 장면일 것이다.

이렇게 물건이던 사람이던 최고만 모여들던 통영이 어느 때부터 사람도 물건도 서서히 떠나가는 도시가 되었다. 혹자는 통영을 떠받치던 수산업이 예전만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조선 경기의 불황 여파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통영의 가치를 너무나 당연시하면서 통영만의 색깔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부족한 까닭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지역개발과 산업혁신을 통해 살고 싶은 통영을 만들고, 통영만의 색깔로 문화예술을 진흥하고 관광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것을 자치역량으로 이루어낼 것을 제안한다.

이른바 통영혁신 프로젝트(Tong-young Innovation by Local Autonomy project )인 TILA (T=Tour(관광), I=Industry(산업), L=Learning(시민교육), A=Arts(예술)을 의미하며, 튀어라를 통영말로 티라로 말하는 것과도 상통함)를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앞으로 3주간 연재를 통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며 통영의 밝은 미래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제2주 : 살고 싶은 통영을 만들자 (지역개발 및 산업편)
- 한산대첩교, 남부내륙철도 개통 등 지역 SOC 산업
- 수산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뿌리경제 살리기

제3주 : 통영만의 색깔을 만들자 (문화예술 및 관광편)
- 통영만의 유무형 문화유산에 대한 재발견
- 시민스포터즈 등을 통한 창의도시로서의 통영
- 대규모 자본주도가 아닌 시민 주도의 새로운 투어리즘 모델 발국
(새로운 모델의 해상케이블카 설치 등)

제4주 : 새로운 통영의 시작, 자치역량으로 이뤄가자 (민간-행정협력모델)
- 관치행정이 아닌 조력자로서의 행정
- 민간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제고할 행정의 역할
- 시민주도의 자치역량 강화를 통해 모두가 주인 되기 프로그램
- TILA를 통해 분야별 목표 달성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