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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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신문
  • 승인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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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님은 가족들의 한복을 챙겼다. 동네 우물에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풀을 먹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의 한복도 어머님께서 손수 지어 주셨다. 특히 한복 칼라의 동전 다는 절차는 정성 그대로이다. 숯불에 달군 인두로 동전을 곱게 붙인다. 두루막까지 차려 입은 할아버님과 아버님 그리고 한복 차림의 우리들은 설날 아침 차례 상 앞에 섰다. 깨끗한 한복을 입는 즐거움은 설날만 즐길 수 있는 의상이다. 그리고 온갖 음식이 준비되고 객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지들이 오니 집안이 북적거리는 것이 큰 재미였다. 어느 집에 손님이 얼마나 오는 지도 관심사였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제법 많이 왔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계셨기에 작은집과 고모님 가족들도 찾아오는 집이었다. 설날 아침의 세배 시간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루에 서서 방에 계신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세배 드리고 나면 세배 돈으로 동전을 받았다. 그리고 덕담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세배 돈이었다. 1년에 한번 받는 현금이다. 그 기분은 이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버님과 어머님께도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 된다. 집안일을 돕는다거나 공부도 그날은 안한다. 설날이 방학 중이라 학교 가는 부담도 없다. 그러하니 우리에게는 천국의 시간이 흐르는 셈이다. 서른 가호 정도의 우리 동네는 모든 집이 세배의 대상이었다. 아버님으로부터 배운 대로 연세가 많은 집부터 보름날이 될 때까지 친구들과 함께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세배를 드렸다. 가는 집마다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어 집집마다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점심때가 되면 떡국도 먹을 수 있었으니 잘 차려진 외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한 설날의 즐거움은 지금 생각하여도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시간이다.

둘째 손자는 형님의 한복을 물려받고, 큰 손자는 새 한복을 샀다. 복주머니를 하나씩 달았다. 며느리는 12살짜리 손자에게 13살짜리 한복을 입히려고 하였지만 손자는 자기 몸에 맞는 것을 사려는 실랑이 끝에 결국 손자의 희망대로 딱 맞는 한복을 입게 되었다. 설날 아침에 세배 행사가 진행되었다. 아내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우리에게 아들 내외가 세배를 하였다. 다음으로 손자 둘도 공손하게 세배를 하였다. 그리고 양반 자세로 앉아서 덕담을 들을 준비를 하였다. 우리 부부는 손자들에게 덕담을 하였다. 그리고 봉투에도 덕담을 써 주었다. 복주머니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손자들은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세배를 하였다. 손자들의 복주머니에는 세배 돈이 두둑하게 쌓여갔다. 손자는 할아버지 집의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사야겠다고 한다. 멀리 있는 조카들은 실시간 영상으로 세배를 하였고, 손자들의 비대면 음악 공연도 보았다.

설날은 세배를 드리려 가족들이 모이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가족 공동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준다. 소띠의 해인 올해에는 소처럼 강인한 힘이 있고, 조용하게 최선을 다하는 소의 기상을 닮고 싶다. 모두가 행복한 새날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