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같이 만나는 친구의 생일이 어제였는데, 오늘 그 친구를 위하여 소주 한잔 하자고 한다. 코로나19 방역 규칙에 맞추어 한자리를 비우고 자리를 잡았다. 푸짐한 반찬과 대패삼겹살 한 그릇이 준비되었다. 대패삼겹살은 돼지고기를 냉동시켜 대패질하듯 얇게 썰어 돌돌 말아서 양이 많아 보인다. 푸짐한 잔치 상이 마련된 셈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몇몇 분들이 우리와 같은 삼겹살에 소주잔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또 다른 친구가 딸기 한 소쿠리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위에 축하 양초를 꽂고 축하 행사를 하였다. 행사라고 보기보다는 깜짝 쇼를 한 셈이다. 한자리 건너의 손님들도 박수로 우리 일행의 생일잔치를 응원하여 주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의 제조는 나의 담당이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소주와 맥주를 나만의 비율로 섞은 소맥을 만들어 한 잔 씩을 돌렸고 잔을 부딪치며 생일을 축하하였다. 삼겹살 불판에는 콩나물과 김치가 올라갔고 마늘도 포함되었다. 푸짐한 삼겹살 구이판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조금 있으니, 다른 상에 있던 지인이 깜짝 방문을 하였다. 빈 소주병에 야채를 두세 개를 꽂아서 축하 꽃다발이라며 환한 웃음과 같이 전달하였다. 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파안대소의 입모양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도 아는 분의 생일 축하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박수로서 축하하고,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건배는 표정으로만 하였다. 방역 규칙을 지키느라 조심하면서도 간혹은 삼겹살과 소주로 축하를 하기도 애환을 달래기도 한다.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 속에 멋과 여유가 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시계 바늘이 저녁 9시에 가기 전 이른 귀가를 서둘렀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1980년대부터 돼지고기의 갈빗살 특정 부위를 '삼겹살'로 칭하게 된 이후, 1994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 삼겹살이 등재되었다고 한다. 1996년에는 대패로 얇게 썬 모양 같아서 붙여진 대패삼겹살이 등장하였으며, 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회식 메뉴가 소고기 등심, 갈비에서 돼지 삼겹살로 이동하면서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저렴하면서도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인 삼겹살의 역사는 의외로 짧았다. 특히 대패삼겹살은 불과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나라마다 서민들이 즐기는 놀이문화 그리고 음식이 있다. 서민들이 떠들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 나라 문화의 출발이다. 트롯이 불과 몇 년 전만 하여도 나이든 분들만 즐기는 추억의 노래였다. 최근에는 미스트롯 또는 미스터트롯의 열풍을 타고 TV 채널을 돌리면 곳곳에서 트롯이 흘러나오고 있고 우리들 속에 숨어 있던 애환이 터져 나오고 힐링도 된다. 유치원생 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트롯이 전 국민이 즐기는 노래 문화가 되었다. 삼겹살을 안주 삼아 한 잔의 소주 그리고 트롯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하는 부모님 세대의 문화가 오늘에도 인기 있는 문화가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저녁 한 때, 뒷골목에 자리한 삼겹살식당에서 왁자지껄하게 어울리고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우리들 삶의 한 단면이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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