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청년 / 리얼라이즈협동조합 정지훈 이사장

“학자금 대출을 언제 갚을까? 제대로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불안정한 일자리와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부재 등으로 인해, 연애·결혼·출산의 세 가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청년 세대를 ‘3포 세대’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때가 2010년 무렵이다. 20대 젊은이들은 불안과 막막함 속에서 내일을 꿈꾸지 못했다.

미디어 영상 촬영 편집 전문가로, 현재 우리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물 기획,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리얼라이즈협동조합 정지훈 이사장(38)도 그 무렵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 통영에 남아 막막했지요. 대학교는 휴학한 상태였고, 학자금 대출은 쌓여 있고….”

그리고 10년, 그는 지금 통영의 문화활동가로, 영상 전문가로, 통영의 청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3년 전 예쁜 아내와 결혼해 함께 ‘245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잖아요. 가장 어려울 때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거죠.”

지훈 씨는 위기를 딛고 일어서서 인생을 다시 썼다.

부산에서 자란 지훈 씨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통영에서 성게 가공 수출을 하는 사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통영에 왔다. 통영고등학교에 전학해서, 고교시절을 통영에서 보내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통영에 돌아온 때가 3포세대라는 말이 나오던 2010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은 통영의 사업을 접고 인천으로 떠나고, 지훈 씨 혼자 통영에 남았다.

앞이 막막했던 지훈 씨는 친구의 소개로 새통영병원 야간원무과에서 일했다. 2년 반 정도 근무하면서, 학자금 대출도 갚고 좋은 인연도 만났다. 그러나 지훈 씨가 원래 갖고 있던 꿈과 원무과의 일은 너무 멀리 있었다.

어느 날, 공황장애가 있는 환자가 야간에 난동을 부린 사건이 벌어졌다. 의사를 폭행하고 간호사를 칼로 위협하는 과정에서 지훈 씨는 환자를 붙잡고 진정시켜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지훈 씨는 환자가 휘두른 볼펜에 목을 찔렸다. 다행히 동맥을 약간 빗겨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일하는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이직 결심한 그는 온라인 커머스 상품 및 인테리어 사진 촬영을 하는 광고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 회사가 숙박 플랫폼을 만들던 곳이기 때문에 통영 곳곳에 숨어 있는 펜션이나 숙박업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고교시절부터 통영에 살았지만, 그가 통영을 제대로 만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찍으며, 그는 통영의 진면목을 만났다.

“와, 통영이 이런 데였어?” 하는 감동을 느끼게 되자, 통제영으로부터 비롯된 통영의 역사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통영의 문화를 더 잘 알게 됐다.

“앉으나 서나 통영을 자랑하는 통영 병에 걸릴 정도였지요.”

2018년에 그는 ‘무형문화재보존협회’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하게 됐다. 통영의 문화재들을 촬영하고 주최자가 되어 문화재 야행을 진행하면서 그는 더욱 통영 문화에 매료됐다.

“그해 통영시청년참여단 위원으로, 2019년에는 통영시청년정책위원회 위원으로, 2020년에는 통영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어요. 통영에 대한 애정이 생기자 이런저런 일을 나서서 하게 되더라고요.”

마치 통영 청년의 대표처럼, 그는 카메라를 들고 통영 곳곳을 누볐다.

“청년들과 교류하면서 보니, 1인 크리에이터 붐이 일어날 때라 사진영상을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는 거예요. 저도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으니,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같이 스터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스터디를 통해 역량 갖추고 지역을 아카이빙하거나 영상물을 기획해 보면 어떨까? 작품을 만들어 상영회나 전시회를 해보면 어떨까?

이런 즐거운 상상으로, 지훈 씨는 몇몇 청년들과 의견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금 신규조합원까지 하면 9명이에요. 작년에 명정동 마을영상 활동가 과정 3기를 우리 조합에서 맡아 교육하기로 했는데, 코로나가 와버렸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1년을 보냈다. 모든 행사와 교육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영상편집을 주로 하던 지훈 씨도 답답한 한 해를 보냈다.

“위기는 다른 얼굴의 기회라지요. 행사는 취소됐지만, 비대면 활동이 늘면서 영상의 역할은 또 다른 면에서 확장될 수 있으니까요.”

지훈 씨는 지금 청년들이 돌아오는 통영을 꿈꾼다. 지훈 씨가 통영에 대한 애정과 프라이드를 갖게 되면서 통영에서 할 일을 생각하게 된 것처럼, 다른 청년들도 애정과 프라이드가 생기면 통영에서 일을 찾게 되지 않을까?

“코로나가 로컬의 시대를 앞당겼습니다. 나로 인해 상권이 형성되고, 내가 있음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옹골찬 분들이 지금도 통영에 많이 있는데,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로 인해 북적북적한 통영이 되는’ 그의 꿈은 오늘 통영의 함께 꾸는 꿈이다.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