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매서운 한파가 몰려왔다. 연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고 있다. 통영에 30여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혹독한 추위는 경험하지 못하였다. 잠바에 코트 그리고 목도리까지 채비를 단단히 하고 나섰으나 추운 겨울바람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다. 마스크를 쓴 입가로 냉기가 들락거리고 눈 아래 틈으로는 삭풍이 들이민다. 틈만 있으면 들어오는 추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마스크 안의 입김이 입술을 적시고 냉기가 축축함으로 변하였다. 북신만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반갑지 않지만 계속 나와 맞닥뜨린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게 하는 힘도 대단하다. 그는 해변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모두 총총걸음하게 한다. 작은 어선들은 부둣가에 매어졌고 그 사이 바닷물도 살얼음으로 보였다. 한참을 걸었을 때, 소나무 사이로 얼굴 내민 겨울바람이 조금 시원함으로 느껴졌다. 마스크를 벗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그는 차가움을 품고 청아하게 얼굴에 스쳤다. 몸의 열기가 겨울바람을 조금씩 받아들여 준다.

겨울바람은 지난해의 묵은 때를 모두 씻어 내고 있다. 나무에 해를 입히는 해충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농부를 괴롭히던 진드기도 죽었을 것이다. 이제 눈에 보이는 공기는 맑음 그리고 청결함 그대로이다. 하늘도 청명함으로 나타났다. 구름 사이에 보이는 파란 하늘색은 겨울 색으로 제격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 여름, 가을이 순차적으로 우리 앞에 올 것이다. 가장 추운 지금의 계절이 사계절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가장 힘든 시간을 먼저 이겨내고 나아가라는 큰 의미를 주는 차가운 겨울이다. 겨울바람은 저녁 모임도 일찍 끝내고 바쁜 걸음으로 귀가하도록 하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그는 밖에서 외롭게 왔다 갔다 방황하지만 방안의 가족들은 길어진 겨울밤을 즐긴다. 어린아이들은 할머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당에 흠뻑 빠진다. 가족사랑은 어쩜 한 겨울에 더 깊어진다. 방안 가득 오손 도손한 가족들의 모습은 겨울에 보는 행복한 그림이다. 창밖의 겨울바람은 소리를 내기도 창틀을 흔들기도 하며 시샘을 하지만 방안 가득히 피어나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멀리 있는 자식들은 이 추위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전화기를 돌리기도 한다. 친구들로부터 많은 카톡 안부 인사가 왔다. 나도 지인들에게 추위를 잘 이겨나가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겨울은 우리에게 감성을 선물해 준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서로 당기는 재잘거림이 방안에 퍼진다. 방안의 훈훈함을 만나는 순간이다. 손자들의 장난기가 잠잠해지면 우리는 깊은 밤의 시간으로 빠져든다. 겨울바람은 밤의 길이를 더 길게 만들어 준다. 문밖에서 서성이던 겨울바람도 이제 우리 성곽 담벼락 되어 방안의 밤을 지켜준다.

겨울바람은 해양공원의 소나무들과 살고 있다. 참새도 나비도 꽃도 없는 고요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겨울밤이다. 혹독한 추위의 겨울바람은 소나무의 친구이다. 분주함이 사라진 시간 여행을 그들만이 즐기고 있을 것이다. 문밖은 겨울바람이 지켜주고 방안에서는 따뜻함을 이불삼은 가족들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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