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키우는 남자 대표 최성진

“굴은 철분과 아연이 많아 소고기보다 수십 배 좋은 영양을 갖고 있어요. 오죽하면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스테미너 음식으로 각광받아왔을까요? 저는 통영에 코로나19 환자가 놀랄 만큼 적은 이유도 굴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굴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 사람은 통영 굴 산업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굴 키우는 남자’ 최성진 대표(46)다.

최 대표가 굴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데는 2012년 본의 아니게 굴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게 됐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인평동에서 나고 자란 최성진 대표는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다. 3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과장이 되고, 회사에서도 임원이 될 거라고 인정받고 있을 때였다.

“아버님이 자꾸 힘들다면서 ‘내려온나, 내려온나’ 하시는 거예요. 아내도 반대하고 해서, 고민을 좀 했지요.”

50년 전, 통영에 굴 양식이 시작되던 그때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인평동 앞바다를 터전 삼아 굴 양식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2012년 4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매일 바다에 나가서 절하는 게 제 일이었어요.”

굴 종패가 매달린 줄을 매고 바다에 빠뜨리는 작업을 하려면 불가피하게 허리를 숙여 ‘절을 해야’ 한다. 줄마다 일일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의 양식장은 30ha나 됐다.

“200미터 10줄이 1ha인데, 30ha니 모두 300줄이잖아요. 배를 타고 그 사이를 지나면서 작업을 하니, 동쪽 보고 천번 절하고, 서쪽 보고 천번 절하면 하루가 다 갑니다.”

처음에 최 대표는 단순 반복 작업에 회의가 들었다. 이런 반복 작업은 더 젊고 힘센 일꾼 하나 더 쓰면 되는 건데, 대기업 간부를 포기하고 올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해 겨울, 미국에서 통영 굴 수입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노로바이러스 때문이었다. 굴값이 폭락하자 양식업자들은 절망했다. 최 대표의 아버지도 ‘최대 위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옛말은 진리였다. 위기가 닥치자 최 대표는 노로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연구실을 차렸다. 큰 수조를 만들어 굴을 배양하면서 노로바이러스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연구하는 한편, 미국이나 유럽의 연구자료들도 찾아봤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처치한 데이터를 굴수협에 넘겨, 바이러스를 일일이 체크하기도 했다.

“사장님, 무슨 수를 써도 바이러스가 없어지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되돌아 올 때는 절망스럽기도 했다. 아직까지 노로바이러스를 박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1년여 동안 바이러스와 씨름하면서, 그는 생산보다 유통에서 노로바이러스가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순수한 의미의 노로바이러스보다 대장균이나 비브리오균 같은 세균의 영향이 노로바이러스로 확대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세균의 문제는 수돗물 세척만으로도 많은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24시간 동안 담가 정화시킬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유통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안전한 처리와 유통망을 통해 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지요.”

그는 연구실에 그는 또 한 품목에만 의존하는 것의 한계 때문에 가리비 양식도 시작했다.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는 데도 품목의 다양화가 유리했다. 평생 굴 양식만 해온 아버지는 “머할라꼬?” 하며 걱정했지만, 최 대표는 “해 보셨어요?” 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굴 키우는 남자’라는 상호를 걸고 직접 유통을 시작하면서 굴 양식만 할 때보다 2~3배 성장했다. 코로나로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지금도, 온라인 유통판매의 길을 일찌감치 터놓은 ‘굴 키우는 남자’는 비교적 사정이 낫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굴 산업에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계속 유입돼야 한다고 믿는다. 양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아버지 세대에서, 젊은 아이디어를 가진 자신이 유통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제 40대인 자신의 세대보다 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일본에 수출하는 90%가 굴을 한 마리씩 얼린 IQF 제품입니다. 얼음막 코팅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한민국은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세계 최고인데도 내수시장에서는 유통이 안 됩니다. 아직도 생굴에 의지하는 판매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최 대표는 젊은이들이 이런 것을 이용한 새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시장에서 굴이 사용되는 범위만 살펴봐도 굴 산업의 앞길이 보인다.

통영 굴 역사 50년, 이제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는 굴 산업을 꿈꾸며 오늘도 그는 ‘굴 키우는 남자’가 된다.

최성진 대표의 회사에는 유통을 위해 젊은 직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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