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랑 디자인, 통영 예술가들도 하나로 묶었다
동피랑 디자인, 통영 예술가들도 하나로 묶었다
  • 김선정 기자
  • 승인 2021.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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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퍼블릭아트그룹’ 삼인방을 만나다
왼쪽부터 김영숙 팀장, 박동주 팀장, 김경희 팀장.

“두 달 넘게 매일 만나다보니, 식구가 돼 버렸어요. 수십 년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하나 된 적이 없었지요.”

코로나19의 상황이 길어지자, 국가에서는 영세한 예술인들을 돕고자 여러 지자체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예술가들에게는 일자리를, 도시에는 아름다움을 더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시도였다.

통영에서는 통영미협, 연명예술촌, 도산예술촌의 34명 작가가 ‘통영퍼블릭아트그룹’이라는 한 팀을 구성해 동피랑에 입체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했다. 하필이면 2년마다 동피랑에 새옷을 입히는 ‘아트 동피랑’ 사업이 먼저 진행중이었지만, 그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통영의 사례는 다른 지자체에서 하고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비교할 때도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인근 다른 지자체는 아직도 사업을 시작하지 못한 곳도 있고, 심하게는 소송에 휘말린 경우까지도 있다. 참여작가 선정에서부터 불협화음의 요소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박동주 팀장은 “통영은 되도록 많은 지역 작가가 참가할 수 있도록 했고, 기준을 정해 참여작가를 선정했기 때문에 첫 발을 잘 뗀 것 같다.”고 말한다. 통영미협 회원만 해도 51명이며, 그 외 미협에 속하지 않은 작가들도 꽤 있기 때문에 누가 참여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첨예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자등록증이 있거나 4대보험을 내고 있는 분들을 제외시키면서 코로나일자리 취지에 맞게 운영하려고 했지요.”

미협 지부장도 제외되는 규정이었지만 통영 미술인들은 이에 따라주었고, 34명 작가가 선정돼 첫 걸음을 떼었다.

“처음에는 벽화 작업인 줄 알고 모든 작가들이 스케치를 해왔어요. 그러나 계속 세미나와 회의를 거치면서, ‘내 작품’을 포기하고 ‘공공미술’로 마을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가게 됐지요.”

작가들이 ‘내 작품’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통영퍼블릭아트그룹’은 투표를 통해 팀장을 뽑고, 팀장을 중심으로 ‘내 그림’이 아닌 ‘우리의 공공미술’을 구현했다. 전체 10개 팀이 동피랑 곳곳을 디자인했다.

김영숙 팀장은 “원로선생님들의 역할이 컸어요. 선배님들이 먼저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공동작업에 나서시니까 누구도 토를 달 수가 없었죠.”라고 말한다.

서형일 화백은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후배들을 기다렸으며, 이인우 화백은 개인 영상장비들을 동원, 스케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이 걱정됐던 임철수 화백은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나와 후배들의 본이 됐다.

팀마다 한두 명,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료 선택에서부터 더 좋은 재료를 확보하기 위한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김경희 팀장은 “그러나 전체 분위기가 ‘하자, 하자’ 하는 식이 되니까 불평하는 분들 목소리가 클 수 없었죠.”라고 말했다. 그가 맡은 팀은 원로들과 젊은 작가들이 모여, 가장 화합이 걱정됐던 팀이었다.

팀장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을 ‘작가들의 재발견’이라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미협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전시회나 행사 때 협업을 했을 뿐 이렇게 긴 시간 같이 생활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꼭대기까지 무거운 타일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노동’에, 묵묵히 등짐을 지는 작가, 누구보다 일찍 나와 “내가 후배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되지.” 하는 대가들을 보며 “저 선생님이 저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가 너무 친해져, 공동전시회를 기획하는 팀도 있다고.

또 하나의 수확은 ‘고향의 재발견’이다. 이제는 작업할 일도 없는데 작가들은 이틀이 멀다하고 동피랑을 찾는다. 단단히 마감해 놓은 작품에 벌써 이상이 있을 리 없지만, 담장 위에 올려놓은 갈매기도 쓰다듬고, 벽에 붙여놓은 물고기도 점검해 본다.

작가들과 계속 소통해 온 동피랑 주민들도, “통영 작가들이 하니까, 더 애정을 갖고 그리신 것 같다.”고 말한다.

통영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쳤다는 소식은 인근 도시에까지 퍼졌다.

한 작가는 옆 동네 미협 회원을 통해 “느그는 안 싸웠나? 우리는 난리가 났었다.” 하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더 친해졌다!” 했다고 귀띔했다.

께 작업을 진행한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