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청년이 없다’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통영신문이 말하겠습니다.
통영에 이런 청년들이 있다고

통영 청년 김아람 작가

“통영은 예술적 소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망산, 매일봉, 통영운하, 세자트라숲… 몇 걸음만 걸어도 자연 속 소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고향에 돌아온 가장 큰 기쁨은 바다의 품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아람 작가(33)는 통영의 바닷가나 숲속에서 영감과 자유를 얻는다. 때로는 직접 먹을 들고 나가 바닷가에 광목을 펼쳐놓고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가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밧줄, 호스 같은 굵은 줄에 먹을 먹이고 튕기거나 두드려 자유로운 먹선을 만들어낸다. 똑같은 작업을 몽돌이나 낙엽, 모래 위에서 실현해, 자연이 스스로 그림을 만들어 내게도 한다.

원래 김아람 작가는 세필로 선을 그려서 꼼꼼하게 면을 채우는 독특한 기법으로 한국화를 그린다. 때로 그가 그린 통영의 섬은 여인의 가채 같은 볼륨감을 준다.

“무한의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을 선택했어요. 자연도 무한하고 선도 무한하잖아요. 그러니 선으로 자연을 그리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요.”

세필화는 장인의 인고를 요구한다. ‘무한’을 그리고 싶었는데, 가는 선으로 빽빽하게 채워넣는 작업을 하다보면 오히려 한계를 만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다양한 줄에 먹을 먹여 튕기는 방법이었다.

숲과 바다에서 먹줄을 튕겨서 작품을 완성해간다.

“정말 재미있게 작업을 하게 돼요. 줄을 튕길 때 자유로운 선이 한번에 그어지는 것에 희열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김아람 작가는 이렇게 먹줄을 이용한 작품과 세필을 이용한 작품을 병행하며 독특한 수묵화의 세계를 개척해 가고 있다.

거제문화예술회관과 거제박물관 박물관대학에서 전통채색화를 강의하면서, 통영시에서 열리는 각종 미술 교육, 문화전시 기획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든 이십대를 보낸 그는 5년 전 돌연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치 실패하고 돌아온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은 다 올라가는데, 중간쯤 가다가 되돌아온 느낌? 부모님 옆으로 온다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에게서 재정적 독립을 한 이십대는 피곤한 대학생활을 보내야 했다. 알바를 해야 미술재료를 살 수 있는 빠듯한 생활, 하지만 그는 총여학생회 회장을 하며 치열한 대학생활을 했다. 졸업할 때는 영남대학교 공로상도 받았다.

졸업하면서 그는 ‘갤러리 분도’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대구에서는 꽤 알아주는 갤러리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미술학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직장이었지만, 3년이 지나는 사이 그는 조금씩 지쳐갔다.

“남의 그림을 걸어주다 보니 오히려 내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지는 거예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러다 영영 내 그림은 걸 데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객지에서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운 부모는 김아람 작가가 고향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김 작가는 서울에 가 대학원에 진학할까 하는 마음을 두고 갈등하다 고향을 선택했다. 고향은 쉼없이 달려온 그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죠. 너무 가진 게 없으니까, 그림 그리기 위해 돈을 벌려고 했는데 통영에서 청년이 취업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단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직장의 문을 두드리던 시간, 김아람 작가는 온갖 알바를 하며 지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정신없던 대구 시절로 회귀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코앞의 일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내 일을 찾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 무렵 지인의 연계로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전통채색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늦게 그림을 시작하신 분들의 열정을 보며, 작가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김아람 작가는 알바를 줄이고 개인전을 준비했다. 40평 공간을 나만의 작품으로 채우려면 기본적으로 작품의 양이 준비되어야 했고, 초대전을 하려면 예술가를 지원해 주는 공모에 당선돼야 했다.

“서른이 되면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됐어요. 그림만 거는 전시회는 하고 싶지 않아, 작품 제작과정을 촬영해 전시 공간에 같이 전시했지요.”

2018년 첫 개인전을 연 뒤 그는 해마다 한 번씩 개인전을 열고 있다. 청년작가 지원사업에 꾸준히 응모하여 선정된 결과다.

힘겨운 이십대를 달려온 그는 이제 작가로서의 삼십대를 힘차게 열고 있다. 고향 통영은 기꺼이 그의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모델이 돼 주었다.

산 결
숲의 기운
전시를 한 능산적 자연
산등성이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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